하나님이 우주 만물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만사의 최종 결정권을 지니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은 창조 사실에 대한 확신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만물의 기원을 진화로 이해하고 이에 입각한 사회진화론 같은 철학을 내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세계관과 맞지 않는다. 진화론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에 입각하여 이해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상 (창1:27)을 심히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하신 세상(창1:1,31) 이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잘 지키고 동시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가야 할 책임이 있다 (창1:28, 2:15). 그리고 이런 창조 신앙 입장에서 잘못된 구원관을 바로 잡아야 한다. 많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구원을 이 세상에서 벗어나 저 세상(가는 천국)으로 가는 것으로만 인식해 왔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 (오는 천국)를 실현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의 의도를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많았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가 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을 기피하는 신앙이 교회에 자리 잡은 것은 성스러움과 속됨의 구분을 방향(direction)의 구분이 아니라 공간 및 구조(Structure)의 구분으로 이해한 결과이다. 방향이라 함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느냐, 사탄을 향하고 있느냐를 말한다. 분명히 삶의 방향에서는 이중성(duality)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 자체가 속된 것과 성스러운 것으로 나뉘어져 것은 아니다. 비록 세상이 인간 타락의 결과로 사탄의 다스림을 받는 상황에 있다하더라도,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기 때문에, 그 세상 자체를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이원론(dualism) 때문에 세상의 삶과 학문, 그리고 예술 자체를 멀리하고 신학이나 성직의 삶만이 가장 성스러운 삶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 자체를 악하다고 볼 수 없고, 그래서 구원을 오직 이 세상에서의 이탈로 볼 수 없다. 진정한 구원이란 원래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웠던 그 세상으로의 회복을 반드시 포함한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란 신앙 안에서 구원이란 전 인격적인 구원, 전 우주적인 구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삶과 학문, 그리고 예술을 포함한 모든 분야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그 원래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처럼 바로 회복된 구원론을 세상에 구체화하는 신앙이 만인제사장 신앙이다. 만인제사장 신앙,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믿는 자의 성직자 됨이라는 종교 개혁 신앙은 오늘날 많이 왜곡되고 있다. 만인제사장 신앙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예수님 외에는 더 이상 중개자가 필요 없고 모든 성도는 교회 내의 지체로서 동등한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종교적'인 의미로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이 만인 제사장 신앙을 말하면서 세상에서의 중보(Fuerbitte)를 강조한 적이 있다. 여기서 중보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키고 중재시키는 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는 화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제사장적 삶이란 교회 내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감당하는 삶 가운데 평화와 화해를 위한 헌신의 자세를 포함하고 있다.
'Christians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여전히 예수인가? (0) | 2011.04.06 |
---|---|
교회의 개혁은 기도의 변화부터.... (0) | 2011.04.01 |
Wahrheit (0) | 2011.03.30 |
여성성의 재발견 (0) | 2011.03.30 |
동성애는 선택인가? (1) | 2011.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