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4.06 왜 여전히 예수인가?
  2. 2011.03.30 Aloha!
  3. 2011.03.29 삶의 최우선 순위
  4. 2011.03.29 생명의 가치

요즘 시대의 사조를 표현하는 단어들에 붙는 공통된 접두어가 있다. 바로 "Post"란 단어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후기자본주의(Post-capitalism),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등등. 이 "Post"를 우리말로 정확히 번역하기란 쉽지 않다. "Post"는 내용과 형식에서 과거의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한편 본질을 간직한 채로 단지 표현 방식을 바꾼다는 뜻이 들어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든, 그 본래의 뜻들을 염두에 두고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척 신경 쓰이는 말이 있다. 소위 "탈기독교문화"(Post-Christian culture)라는 단어이다. 현대문화는 더 이상 기독교를 중심에 두지도 않고, 미래의 대안으로도 여기지 않는다. 기독교문화는 이제 사라져 가는 과거의 유물처럼 이해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배타적"인 구원론이 현대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원주의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에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 없는 "폭력적"인 주장이란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회문화가 현대인들을 숨 막히게 한다고 비난한다. 교회의 언어와 행동양식은 더 이상 개인의 자유가 만끽되는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판단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많은 현대인들이 구원과 삶에 관하여 말할 때, 왜 아직도 예수를 말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있다. 현대인의 문화감각에 의하면, 예수만큼의 "성자"는 많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 길은 다양한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예수를 찾아야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간디, 체 게바라 등등 그들 나름대로 멋진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반드시 예수만이 구원의 빛이요 참다운 삶의 이정표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대문화의 도전에 두 가지의 쉬운 응전이 있다. 하나는 대립하고 부정하는 길이다. 혹자는 현대문화는 그 자체로 타락했기 때문에 조금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전통신앙을 견고히 붙들고 오직 예수, 오직 교회만을 믿고 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길에서는 현대문화와 대화란 있을 수 없다. 반대로, 현대문화와 타협하고 긍정하는 길이 있다. 이제 문화다원주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교에도, 이슬람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든 문화 현상에는 그 나름대로의 종교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구원을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돌려버린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응전은 예수에 대한 깊은 묵상을 방해하며,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하게 한다. 현대문화와의 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우리 삶과 유리된 교리적인 종교숭배 대상으로 고정시킨다. 반대로 현대문화와의 친화를 도모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인간완성이라는 휴머니즘의 도구로 공중분해 시키고 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여전히 예수가 우리 삶의 중심임을 확신하고 선언해야 하며, 그 예수를 삶의 현장에서 포용력 있게 "재현"(represent)해야 한다. 이 가운데 "그리스도인"이란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분리(separation)나 동화(assimilation)가 아닌 "개혁"(transformation)의 길에서 찾아질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교리주의적인 틀에 예수를 가두어 둘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고백 안에 담긴 "우상성"을 통찰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를 그 우상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진정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력 있는 예수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현대문화 가운데 담긴 "악마성"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중심문화가 빚어내는 참담한 인간성 파괴의 그림자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모든 삶의 관계에서 연대성이 사라지고 파편화되어가는 비극을 통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인간을 살리는 공동체의 중심으로서 예수를 되찾아야 한다. 예수 안에서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이 살아나며, 그 생명의 사람들로 형성하는 <공동체>를 이룩하는 비전과 실천 가운데 교회가 위치할 자리가 있다. 생명공동체!


아직도 기독교세계관운동이 의미 있는 것이라면, 예수의 생명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길에 기여하는 자리로 나서야 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데올로기보다는 한 개인마다 친밀한 대화와 삶을 나누며, 그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구원자" 예수를 생동감 있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함께하는 삶이 빚어내는 공동체를 의미 있게 세워줄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되시는 "주님" 예수를 전 삶의 영역에서 재현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예수"를 말해야 하며 또한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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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ws4u

Aloha!

죠스단상 2011. 3. 30. 03:36
Aloha! I have recently learned of the meaning of this word from a friend in Hawaii. 'Alo' means "to share together or exist." 'Ha' is "breath of life." It is really good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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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ws4u
성경 본문 :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여러분들의 올해  최우선 과제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최우선 과제이든, 그 과제를 이루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동일하게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은 바로 그 자세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여기서 <먼저>를 교회활동과 관련된 종교적 행위를 우선시하라는 말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삶을 살아가든지> 그 가운데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교회이든 그 무엇에 참여를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 - 전후맥락을 보면 세상 생활에 꼭 필요한 의식주를 가리킵니다 - 이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우리에게 훌륭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늘 떠나지 않습니다. 일류대학을 보내 ‘출세’시키는 것이 목적인가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를 통해 이루고자 갈망하고 있나요? 먼저 우리 자녀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소명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은사를 찾아 개발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갖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의 의>는 무엇입니까? 도덕적으로 반듯한 성품이라 할 수 있는데, 성경은 늘 약자를 최우선적으로 돌보고 존중하는 관계를 통해서 <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시간을 누구에게 드리고 싶습니까?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나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의로운 삶은 이와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익추구 보다는 내 것을 대가없이 나누어야 하는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나가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거룩한 삶이란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낭비요 어리석음일 수 있습니다. 그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거룩한 낭비” “거룩한 어리석음”이 의로운 삶의 자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의 초점은 사람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명을 살리는 일에 충성하는 삶을 살 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초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 때 주어지는 결과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물질에 있으면 맘몬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구절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 로 끝납니다.
 
자녀들이 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영화 “패치 아담스” DVD를 주었습니다. 버지니아주에 있는 Gesundheit Institute를 설립한 의사 아담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자살밖에는 고통의 탈출구가 없었던 아담스가 소외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소명과 은사를 발견하고 의사가 되기 원하면서 하는 말이 감동적입니다. “아마 나보다 더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자살을 시도했겠는가. 그런데 나는 이제 나의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았다. 문제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들을 섬기는 것이 그 길이다. 그 길을 통해 나의 문제가 해결됨을 체험하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삶, 여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 올해도 살림교회는 무엇을 하든지 그 가운데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집중합시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4복음서비교성경공부, 기독교세계관제자훈련, 살림방, 문화사역, 대외봉사 등등 그 것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결과로 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올해는 이처럼 사람 살리는 일이라면, 감사와 기쁨으로 내 자신을 드릴 수 있는 멋진 삶을 살아갑시다. 

(2008년 1월 1일 신년예배 설교)
Posted by jaws4u

생명의 가치

죠스단상 2011. 3. 29. 02:16
생명보다 앞설 수 있는 권력은 없습니다. 또한 생명보다 앞설 수 있는 종교도 없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모독하는 정치와 종교에는 더 이상 진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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